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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메모_기록 (공들이지 않은 것들의 모음)

_01.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 생각의 전체 과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신비롭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 1955년 BBC 라디오 강연에서-

 

 

 

첫번째 논문 - 1. 지능을 가진 기계 (1948년)

 

P15. 튜링은 기계의 지능, 인공지능에 대해서 토론 할 때 '지능'이 무엇인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설명하거나 정해 놓기가 어렵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라는 것을 간파 했다. 게다가 적당히 '이러이러한 것을 지능이라고 하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다들 거기에 동의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략)...... 그런데 사람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마치 사람같아 보이는 이 기계도 지능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바로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 

 

P30. 기계의 기억 용량은 얼마나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직전 상태의 함수로서의 기계 상태와 이에 해당하는 외부 데이터가 있으면, 이산 상태의 행동을 완벽하게 서술 할 수있다.

 

P.37 비정형기계: 그 기계는 매우 많은 개수인 N개의 비슷한 소자(unit)로 이루어진다. ......(중략)...... 모든 소자는 중앙 동조 장치에 연결되는데, 여기에서는 동조화 펄스가 거의 같은 시간 간격으로 방출된다. 이 펄스가 도달하는 시각을  '모멘트'라 고 부를 것이다. 

 

P39. 비정형 기계는 임의로 배열된 신경세포의 신경계를 모사하는 가장 단순한 모형으로서 흥미를 끈다.

 

P52. 우리의 의도는 기계의 행동이 틀렸을 때 고통 자극이 일어나고, 옳았을 때 쾌락 자극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교사'가 적절한 자극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교사'가 적절한 자극을 신중하게 가하면 '성격'은 바람직한 -즉, 잘못된 행동이 감소하는-쪽으로 수렴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P.60 훈육과 더불어 필요한 것을 우리는 창의라고 부른다. 이 진술은 정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에게서 창의의 성격을 찾아내어 이를 기계에서 시도라고 복제하는 것이다. 

 

두번째 논문 - 2. 계산 기계와 지능 (1950년)

 

P. 81 "기계기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흉내 게임을 잘할 수 있는 상상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가 있을까?"로 바꿔야 한다. 원한다면 이 질문을 더 일반적으로 바꿔 "흉내 게임을 잘할 수 있는 이산 상태 기계가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P. 82 나는 50년 안에 약 10의 9승의 저장 용량을 가진 콤퓨터를 프로그래밍 하여 흉애 게임에서 평범한 질문자가 5분 동안 질문한 뒤에 정체를 알아맞힐 확률이 70퍼센트를 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다. 

 

P.83 우리는 인간이 어떤 미묘한 방식으로 우월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필연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최선인데, 그러면 자신의 우울한 지위를 잃을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P.94 기계가 기계 자신의 생각거리가 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생각거린느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일 수 도 있고 자신의 구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이 낳은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기계는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다. 

 

P.109 학습하는 기계의 중요한 특징은 교사사 기계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거의 모르면서도 학생의 행동을 어느정도 예측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정리:

인공지능의 어원을 따라가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 무려 70년전에 쓰여졌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몸집만 커지는 이 괴물같은 기술은 이미 인간의 존엄을 넘어 스스로 존재감을 뿜어낸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생각의 바닥에는 모든 것이 인간의 본능에 대한 발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나약함의 이면이 아닐까? 마치 자기 과시가 실은 자기 열등감의 발현인 것 처럼 말이다.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나의 무지가 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될 것이 무서웠다면, 인공지능의 언저리를 매만지고 있는 요즘은 나의 무지가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욕구가) 세상을 잠식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진다. 

우리는 모래알 만큼 다양해서 누구도 완벽하게 타인의 제어할 수도 타인에게 정의를 강요할 수도 없을것이다. 정의란 개인의 수만큼 존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제어해야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지막은 나의 예측 불가능함에 감사했다. 내가 학습하는 기계가 될 수 없고 내가 기계에 밀려 삶을 위협받는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한다.